딸이 3살 무렵? 홈스쿨링을 접하고
우리나라 1세대 홈스쿨러들에게 들었던 건
초등시기까지 함께 잘 걸어가 주면
중고등은 아이들 스스로 한다는 것이었다.
중고등까지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면 가능할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중간에 나의 건강문제로 대안학교를 3년6개월정도
경험했던 딸은 중1 때1 다시 스스로 홈스쿨링을
결정하곤 이제껏 지내왔다.
안 가본 길, 함께 할 수 있는 홈스쿨러 동역자도
거의 부재인 지방에서 홈스쿨링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와 보니 정말 그렇다.
중고등은 스스로 하는 시기다.
유치, 초등시절이 그래서 너무 중요하다.
나는 학창 시절 정말 '진짜공부''진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여기서 말하긴 어렵지만 방황을 시작하며
공부다운 공부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공부하며 배우는 즐거움을 알고
성취감을 경험하며 점점 나의 진로를 고민하고
성장해가야 할 시기에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자라며 겪게 된 학교에서의 아픔으로 학창 시절은
방황의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초등 6학년 때부터 중1에 올라가며
공부에 불꽃이 붙어 성적이 오르고
전체 상위권 성적을 얻으며 나의 기준은
잡혀있었던 것 같다.
방황 중에도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워서라도
공부하며 성적은 거의 1등급을 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문제집 좀 풀면
되고 시험 범위 내 지식을 달달 암기하면
되는 공부였다.
물론 당시와 지금 다른 부분이 왜 없겠나?
하지만 우리나라 공교육의 변화는
크게 와 닿지 않다.
수시로 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것 등에
대해서는 아주 큰 차이지만 말이다.
하나 벼락치기로 1등급을 낼 수 있는 게
진짜 성적일까? 이게 공부일까?
그래서인지 나는 중요한 시험에선 낙방을 했다.
재수할 땐 정말 다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어
다른 선생님들하고 좀 다른 사고를 가지고
계신 듯한 젠틀한 선생님께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차가운 현실뿐이었다..
그는 그저 소명이 없이 직장 생활하는 분일뿐이었다.
공부란? 무엇인가?
교사의 자질은 무엇인가?
많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방황하던 시기 어떤 선생님도
내가 가진 문제를 알지 못했고
실장 부실장을 하며 성적이 잘 나오던
아이가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서야 돌아봤다.
그러나 난 곧 졸업을 해야 했다.
누구도 대화하며 잡아줄 이가 없었다.
걱정할까 봐 부모님껜 말 안 하고
선생님껜 그런 걸 말할 생각 조차 못해 봤다.
나의 책임이 일차적이지만
너무 아쉽고 속상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감사하게도 친구들이 많았고
뭣보다 예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곤고함을 가지고 살았던 학창 시절이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의 성품과 신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은혜의 광야였던걸 알게 됐다.
...
다시 돌아와~...
그런데 놀라운 건 지금도 공교육에선
문제집을 푸는 공부가 중심 이란 거다..
주입식도 필요하나 너무도 일방적인
수업과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 ㅜ
나의 학창 시절과 뭐가 다르지?
아들이 공교육을 다니게 되면서
그럼 어떻게 자신의 소명을 찾아
가게 함께 하면 될지, 양육자인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주입식, 암기,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싶고
하게 해 주고 싶다.
지금은 인권이란 이름으로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들을 가르칠 수도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내가 홈스쿨이란 걸 듣자마자 놀랐고
엄청난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십 가지다.
이 곳에 다 담을 순 없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란 게
놀라움의 시작이었다.
대게는 국어책과 시험지에 몇 줄 나오는
지문이 전부인 추천도서들의 명장면들~
교과서마다 지문에 사용되었던 그 책을
첨부터 끝까지
읽어내는 게 국어공부라니~~~
주저리주저리...
(다른 글에서 다시 담을 기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3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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