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창30:2-5)
라헬이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말합니다.
아이가 없음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통회하면 되었을 텐데 라헬은 언니와 자신을 비교하고, 가난한 마음을 시기로 빼앗깁니다.
그리고 결국 남편과의 다툼으로 이어집니다.
나도 아이를 낳게 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말합니다.
라헬의 시기가 야곱에게 영향을 준 것도 있었겠지만
야곱이 하나님앞에 나가지도 라헬을 사랑으로 권면치도 않고 화를 냄으로 이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만족을 채우게 됩니다.
아내도 남편도 하나님 앞에 각각 서 있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말씀하시는 대로 에서인 척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의 영적 실력이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과의 관계에서조차 드러납니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30:6)
자신들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니 아들을 주셨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스마엘을 얻었던 아브라함을 봐서도, 이후 그의 후손의 원수가 되는 것을 보면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뿌린 것을 자신이 거둬들인다.
주님을 떠나 살던 자들이 이후 주님을 만나고 사랑하고 동행하며 주를 위해 살지만 자신들이 이전이 뿌렸던 열매를 먹는 일이 발생할 때 감사할것은 당연히 기뻐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원통해 하고 낙심하고 하나님께 원망하기도 한다.
하나님께 나아갔기에 , 빛이 임하매 어둠이 드러난것이 은혜인 것을 아는 것도 매우 중하매,
그 어둠으로 인해 우리의 이전 존재의 정체를 더 깊이 알고 주님의 피흘려 죽으심과 부활의 은혜에 감격하고 엎드릴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부활의 권능과 승천하신 하나님우편의 예수님과 함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땅에 공중권세를 창조주의 권능과 권세로 다스린다는 것을 더 깊이 인식하고 사용해볼 기회를 얻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고난중에 은혜를 또 경험케 되니 얼마나 큰 은혜인가?
수 많은 이들에게 주의 권세와 권능을 나누고 전할 은혜의 기회가 됨도 감사의 기회다.
다만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기도할지 잘 모른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가장 먼저고 그 안에서 성령님과 동행을 통해
축사도 필요하고 방언기도도 필요하고 기름부음 받은 이의 도움도 필요하다. 탄식하는 기도도 드리며 다양한 영적원리를 성령의 무기로 사용하며 담대하게 공중권세를 대적하고 제거하며 이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풍성히 누리고 흐르게 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가도 괜찮다. 자유하다. 부유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과정을 성경적이고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와 성품과 인격으로 서 있으면서 영혼을 세우고 섬기는 리더가 부족하다.
오히려 수많은 은사받은 이들의 불균형한 사역으로 한국교회가 성령님을 거부하고 터부시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뭐가 다른가? 시대와 상황과 환경 때문에 묶인 소설 속의 인물과 뭐가 다른가?
정말로 구원받고 성령세례 받은 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성령님의 존재가 나타나는 증거가 무수히 많다.
자신의 다듬어 지지 않은 성품과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해결하지 않은 상처와 말씀의 반석에 굳건히 서지 못한 것을 핑계대고 있는 것 뿐이다.
솔직해져야 한다.
두려운 것이 아닌가?
어떻게 해얄 지도 모르고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러는 것 아닌가?
솔직히 나처럼 소망이 되고 성령님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모하니 어떻게 해얄지 모르지 않나? 누구에게 도움을 받고 올바른 가르침도 기름부음도 받고 싶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물어볼 , 제대로 서 있는자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지금처럼만 신앙생활해도 뭐가 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나오라. 정말로 나 스스로도 내가 섬기는 영혼도 성부성자성령하나님과 제대로 교통하고 교제하며 동행하고 있는가?
정말인가?
종교적인 거 말고.... 열정말고... 분주한 것이 신앙인 것으로 착각 말고....... 조금만 들여다 보면 주님이 아닌 것으로 만족하고 채워진 것이 보인다.
자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 감사하고,
더더더 성령님을 마음에 사모함으로 모셔들이자.
그리고 불법적인것들을 떠 올려주시길 간구하고
기억나는 것들을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가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불로 소멸시키고
파쇄하며 무저갱으로 보내는 작업을 하자.
매일 매 순간 공중권세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자는 찾아 다닌다. 하나님과 친밀함이 있어 주님과 깊이 동행하면서도 우린 세상 가운데서 어떤 생각과 맘으로 삶을 사는지 모를 이들을 수시로 만나고 그런 이들이 거했던 장소에 가며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우린 숨 쉬듯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로 심령을 새롭게 하고 불법적인 것들은 스스로도 축사하며 정결케 하며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정말 쉽고 단순한 작업이지만 몰라서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 조차 짊어지고 살고 이후 나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 모르고 속고 살면서 혈기와 분노 다 부리고 연합을 깨뜨리며 감정의 기복에 휘둘리며 탐욕에 이끌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끌려 다닌다.
겉으로 보이는 두꺼운 종교의 영에 쌓여 괜찮은 신자인지 스스로도 속으며 산다.
사역이 내 이름표고 열매인지도 솔직하게 보고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누리길 축복한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30:8)
경쟁하며 사느라 얼마나 자유함 없이 눌려 살았을까?
쫓겨 살았을까?
이번 한번만이겠는가? 성경에는 이후로도 경쟁하며 자유함과 감사없는 라헬을 쭉 본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창30:13)
레아조차 자기 스스로를 대변한다. 자신의 아픔을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르우벤이 가져온 합환채로 라헬에게서 남편과 동침할 기회를 얻는다.
영적인 무딤은 가문에 흐른다.
생명도 흐르지만....대부분 그 생명을 누릴줄도 모르고 흐름을 막는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행하는지가
이미 주신 생명을 누릴수 있는지를 결정하며
누릴지 막을지 흐를지 열매를 맺는다.
긍정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주님 앞에 가고 주님이 이끄시는 것만 반응하믄 자유한데 우리는 옆을 본다. 상황과 환경에 쉬 무너진다.
그러나 곧 다시 시선과 생각과 마음을 주님의 언약의 말씀 위에 두고 주께 묻고 음성을 들으며 생각하고 선포하며 행동하는 것만 해도 사실 하루의 삶이 만만치 않은데, 다른데 정신과 맘을 빼앗기노라면 얼마나 쫓기고 쫓기는지...
내면의 상처가 얽히면 더 힘들고 안팎으로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낼 여력이 부족해서 지치기도 한다. 아무일 없이 사는 것 같아도, 내버려 둬도 하나님과 상관 없이니 그냥 살아지는 경우다 . 외에? 내가 직면하는 것을 피해서 쉬운길 넓은 길로만 다니니 괜찮은줄 아는 것 뿐이다.
하지만 뿌린대로 거둘 때가 있다.
내게서나 가족이나 후손을 통해 반드시 나타난다.
일찍 알고 먼저 맞는 매가 낫다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빨리 직면하고 인정하며 가지고 나가 처리할수 있게 되는 것이 지혜고 은혜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창30:31)
라반이 또 제안을 하자 야곱이 이번에는 요청한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창30:32-33)
실제로 야곱이 물을 먹으러 오는 동물들이 교미를 하게 해서 얻은 새끼 양들이 자기 말대로 줄무늬나 얼룩이 있게 하였고 튼튼한 암컷들이 오면 교미를 유도하고 약한것들이 왔을 때는 자기가 만든 나뭇가지를 놓지 않으며 머리를 썼다.
야곱의 흥정과 머리쓰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로 부터 왔을까?
계산적이고 머리 쓰는 야곱을 보면 지혜롭고 능력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랑스럽지 않다. 평강이 없다. 과연 하나님께로 부터 왔는지 의심스러운 그의 모습,,,, 그것이 하나님 없이 사는 우리네 인본주의적인 삶 아니겠는가?
그런 그가 라반을 떠나기 전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면서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며 떠나기를 요청합니다.
라헬과 레아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이들이 가진 부가 정말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고 신뢰하며 고백하는걸까요?
꾀를 내고 열심히 자수성가 했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며 율법을 내세우고 정죄와 판단을 쉬 범하는 노력파들이 떠오릅니다.
성실해야 하고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 성경적인 것 맞는데....... 매일 주님의 은혜로 영혼을 사랑하는 맘과 주의 나라를 위해 모든 공급의 근원이신 주를 바라보며 뿌리는 자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 너는 네 조상의 땅, 너희 친족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과도 함께 하십니다.
친히 맺으신 언약을 이뤄가십니다.
라반을 통해 훈련하시고도 자기 노력으로 삶을 꾸려가는 야곱이지만 주님의 때에 이루실것을 이루십니다.
아버지의 이름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하신 말씀 처럼 다듬고 가시기도 하고 다듬으며 가기시도 합니다.
~~~~~~~~~~~~~~~~~~~~~~~~~~~~~~~~
주님, 문득 기도의 응답, 왕의 정체성을 누리는 아들로서 언약을 성취 하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다시금 떠오릅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렸어도 주님은 응답하셨습니다.
비록 더디고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이 대부분이이었지만 주님의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주님께 반응하고 의지를 드리므로 반응하고 함께 하는 것일 수록 더디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우리의 때가 더 빠르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즐거이 부르며 기억하고 선포할 수록 카이로스의 때는 가장 적합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축사가 필요한 나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먼저 해결해야 하는 부분은 더뎠고 버거웠고 아팠습니다.
또 다른 문제로 확장될수 있는 여지가 컸고, 그래서 불필요한 것과도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기니 지치게 되기도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다양한 역사를 스스로 제한하고 사모하지도 않은 결과가 성령을 훼방하고 소멸하는 결과가 될 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든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으로 주어졌든 우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도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주님의 사랑 때문에 호흡속에서 그 사랑을 먹고 마시며 생수의 강을 헤엄치며 혼자가 아닌 함께 광야도 침묵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지날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때 막연히 기다리고 바라보거나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세와 권능을 사용하며 따라 갔다면 더욱 자유함이 있었으리라 고백케 됩니다.
축사도 말씀 선포도 생각을 말하고 행동하며 혼과 몸을 다스리는 적극적인 영적원리를 사용한다면 충분한 것을 너무 어렵게 소극적으로 생각만 했습니다.
그 단순것을 배워본적도 없고요.
제가 누리지 못한 그 하나님나라도 , 흐르지 못해 영혼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것도 가슴 아픕니다.
이젠 뒤돌아 서지도 머믓거리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주를 신뢰한다는 것은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삶속에서 경험할 때마다 삶의 예배가 되게 할것입니다.
내 꾀와 열심이 아닌,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살것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사랑을 충만히 부으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것이 진정한 기도응답임을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 성령이 제 맘에 먼저 소망을 두고 행하심임도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나의 뒷배아빠~
🥰이 시즌에 미국에서 사역하시는 에미꼬 아브라함 정 박사님을 유투브릉 통해 알게 되고 영적원리를 제대로 배울수 있어 감사감사.
주님의 은혜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기쁨이다.🥳
#에미꼬 순 선교사님#아브라함정 박사님#미라클 스쿨
카테고리 없음
진정한 기도응답?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