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그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고,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리고,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3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5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6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으셨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신다."
10 무리가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눅3:1-10, 새번역)
예수님의 공생애 직전에 사역을 시작했을 테니
사도바울도 20대를 거의 다 보냈을 때이겠군요~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로 모태로부터
성령충만함을 받았던 요한...
거의 30년을 빈들에 살면서 그 때를 기다리며
매일 반복되는 삶을 묵묵히 받아 들이며
카이로스의 시간을 바라보던 그....
3:2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요한에게
그 날 임했습니다.
2장과 3장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생략 되어
우리는 요한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감히
상상하기가 쉽지 않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마자 3:3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3:4 이사야의 예언된 말씀이 이미 그 심령 안에
못 박혀 있었고 말씀대로 거침없이 선포했습니다.
자신의 소명, 정체성에 대해 이미 듣고 자랐을
요한은 자신이 주님 앞에 서서 어떤 몫을
받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그를 통해 주의 말씀은
예비된 자들에게 들렸고 찔림이 있었으며
세례를 받는 역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선포하는 담대함이 놀랍기만 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에 말씀만 일하셨습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이들은 3:10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마치 일제치하의 친일파와 같이 로마에 붙어
이스라엘 민족들의 피를 빨기에
백성들이 경멸하던 세리들 조차
요한에게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물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협박하고 억지로 빼앗고 거짓고소
하여 속이고 빼앗는 일들이 비일비제한
존재일 뿐이었나 봅니다.
그런 군이들조차도 요한에게 나아와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물었습니다.
모두 상식적인 것 조차 지키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상식과 기본조차 통하지 않고 법과
양심은 찾아볼 수 없는...어쩔수 없다면서
하나님을 떠난 방식을 너무나도 쉽게 선택하며
살던 시대였습니다.
그것이 죄라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것에 더 급급한 삶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구실 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은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안될 이유,
암흑이 시대에 짙게 깔린 때가 하나님의
카이로스의 시간...
어둠가운데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예수님만이 하실수 있는, 그분께만 영광이
돌아갈 수 있는,,,, 십자가에 대신 지실 모든 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세례요한의 물이 아닌 성령과 불로써 죄를
씻어줄수 밖에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여전히 주님께로 가기 보다는 먹고 살기에 바쁘고
문 밖에 예수님이 늘 기다리며 서 계시도록
하게 되는 우리네 분주한 삶과 뭐가 다를까요?
오히려 예수님께 구원과 성령을 받기 까지
더 많은 율법과 은혜의 약속을 받은 존재로써
더 큰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편안하고 시선과 마음을 빼앗길 만한 수만가지
상황과 환경 속에서 또 다시 도둑질 해 가는
영의 세력에 눈 멀어 있습니다.
시내산 아래 금송아지나
하나님이 불태우시던 산당과 우상신과
로마압제 같은 눈에 보이는 신 보다도 더 큰
자아을 모시고 삽니다.
그것이 오늘날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원만이
진리임을 보여줍니다.
주님 30여년을 빈들에서 주의 말씀 안에
살다 임하신 성령께 이끌려 소명을 감당하던
요한이 그 짧은 시간 몫을 감당하곤 옥에
갇혔습니다.
그만큼 악한 시대에 예수님만이 유일한
소망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작정과 주권대로 이뤄가심은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선히 성취하시는
만왕의 왕이심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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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수 밖에 없으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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