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이력서>
1. 1세 ~ 8세 6개월 ㅡ 홈스쿨링
2. 초등 1학년 2학기 ~ 6학년까지 ㅡ
기독교 대안학교
3. 중1 ~3 ㅡ 홈스테이
4. 고1 ㅡ 2학년 고등학교 현재 재학 중
5. 이력이 추가될지도 모를 예정...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는 아이치곤
18세 아들의 이력이 그다지 단조롭지만은 않다.
자녀들을 태중에 품었을 때부터 기도하는 것 중
하나는,
성장 과정인 학창 시절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알아가고 그것을 위해 준비되는 시간이 되어
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때에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기를 위한
간구였다.
나름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있는 것만큼만, 욕심부리지 않으며
홈스쿨링을 했고 아들이 대안학교를 다니는
시절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들이 어린 시절 홈스쿨링을 하던 시기만 해도
초등 고학년 시기부터는 자원봉사와 알바도
경험하며 지경을 넓혀가고자 했었으나
나의 건강상의 이유로 아이들은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고 나니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 홈스쿨링도 생각해 보지 않은 길이었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당황스러운 광야였다.
물론 홈스쿨링을 할 때도, 그 이후 대안학교
시절이든 어떤 시절이든지 정말 사람이
계획을 세우나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셨다.
아들이 5학년 무렵부터 공교육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얘길 꺼냈으나 회피로 오해했던
부분이 있었다.
잘 달래고 권면하며 보냈으나 중1이 되려는 해
4월 터질게 터지고 더는 인내할 수 없어
막무가내라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으로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아무런 설득도 권면도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년 고등학교 다니며 전학을
고민하며 조심스레 운을 띄우는 아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함께 기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았던 것처럼 하지 못함이 아쉽다.
어쩌면 그땐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대안학교를 그만 다니고 싶어 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만한 요인을 한참을 지나고
알게 되며 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이
처음 말을 꺼내던 5학년 시기부터 있었음을
짐작하게 되니 오히려 아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아들의 비논리적인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잘 몰랐던 갱년기 전조증상까지 겹쳐
아들과 한동안 큰소리가 오가고 속이 상할 대로
상하는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의 태도와 생각의 오류가
아이에게 잘못된 행동과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셈이었다.
다른 글에 남겼던 것처럼 아들은
중학교와 교육청의 안내 실수로
중학교 입학이 어려운 일이 발생했고
중1 때 홈스쿨링을 스스로 선택한 딸과 다르게
아들은 홈스테이를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들의 그런 새로운 시작은
홈스쿨링의 다른 말, 홈스테이였고
홈스테이의 다른 말, 곧 방황이었다.
아들에게만큼은 그런 의미의 삶이었다.
그것이 아들의 광야 시작이었다.
아들의 방황은 방콕에서 게임하는 것이 전부인
삶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은 잠시 하게 되고 책을 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서 중독에 대한 염려는
말 그대로 염려인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당시 아들과 내가 부딪힐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왜 대안 학교에 보냈냐는
원망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녔으면
지금처럼 내가 바보는 되지 않았을 거라는
아들ㅜㅜ
너 대안학교 계속 다니면 바보 된다~ 고
먼저 공교육으로 넘어간 형아들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는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아들ㅜㅜ
오로지 신흥종교같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이단종교, 대학.
그것이 다음세대도 부모도 대한민국도
병들게 해왔다.
부모들에겐 두려움을 주고
우리 아이들에겐 얼토당토 한 정체성을
갖게 하는 ...ㅠ
홈스쿨링을 하게 된 , 대안학교를 보내게 된
과정과 나름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도 아들은 듣지
못했다.
아들의 갈등과 원망은 하나님께로 전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며,
결국 내가 하나님께 엎드리고 부르짖는 동안
내가 변하고 주님의 마음을 조금씩 품기 시작하며
아이는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방에서 나올 때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찾아와 꼭 안아 주고 가는 아들.
수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런다.
어떤 때는 일부러 나와서 나를 안아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
그런 아들이 작년에 나름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진로를 고민하고 전학을 결심하며 함께 기도하며
찾아보고 대화하는 6개월여 시간 가운데
많이 성장했다.
전학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는 모든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동일한 고민과 갈등이 언제 올 수도 있지 싶어
기도를 쉬지 않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상위권 아이들을 제외하곤
수업시간에 나머지 우리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우리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책상에 앉아서도
방황을 한다.
나는 누군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한다.
직면하고 싶지 않아 잠을 자기도 한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공부가 재능 있는 아이들 외에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헤맨다.
어쩌면 고민하고 방황하느라 튀는 아이들은
용기 있게 직면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잘 적응해 가길 바라는 맘,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기회로 삼고 수고해 보길 바랬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은 맞지 않는 현실 속에
들어가고 받아들이며 그 과정을 통해
다듬어지는 삶이 아니더냐.
지금 조금은 수월한 때에 훈련이 되고 익숙해 지길
바라는 맘에 견뎌 보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할 수
있는 것이라도 집중해 보자, 공부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가는 기회이니까. 아들은 아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통해 기르면 돼.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이 결국
공부하며 인내하는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게 되는데
아들도 졸업 때까진 인내하며 성실히 학교를 다니는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도 같은 성품을 얻을 수 있어~
하며 그때마다 다독여 본다.
하지만 하루하루다.
내일 일을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매일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한다.
얼마 전 학교에서 CST-A성격강점 검사라는 것을
받았는지 어느 날 검사결과표를 보여준다.
지혜, 인간애, 용기와 절제, 정의와 초월의 핵심 덕목.
아들은 초월성의 감사 덕목이 강점이었다.
그밖에 대체적인 강점 영역은
감사와 겸손과 종교성과 개방성과 용감성.
강점인 덕목들을 가지고 칭찬해 주니
행복지수가 엄청 낮게 나왔는데 무슨 소용이라고 한다.
낮은 건 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어디?
주관적인 행복도였다.
아들아 행복 도라는 건 어제와 오늘이 다를 수 있고
내일은 또 다를 수 있어.
지금은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기에 그것과 관련된
삶들에 성취감이 적으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아들이 짧은 시간에 형성되기에는 어려운
성품들을 갖고 있어서 엄마는 너무 감사한데?
그거 쉬운 게 아니거든.
아무 말 없는 아들.
아들은 요즘 자퇴를 생각한다.
홀로 고민하다가 불쑥불쑥 자퇴할까? 하고
말을 꺼낸다.
하지만 대화를 시도할라 치면 피한다.
아직 고민할 시간이 필요한 게지.
스스로도 두렵고 확신이 없고 그래서
그럼 뭘 하면 되지? 여러 생각 중이고
그래서 뭔가 찾아보고 있는 것 같다.
불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전 까진
일단 돈을 벌기 위해 00 해볼까?라고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나도 맘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한 가지 길만 있는 건 아니니까.
아~~~ 가보지 않은 길을
21년째 결혼하는 순간부터 매번 새롭게
맞이하고 부딪힌다.
아니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쉽지 않은 성장과정까지 경험하며 살았던 나로선
인생이 멋진 드라마 같은 하나님의 작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도를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됐고
주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그런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깊이 경험한 인생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새로운 옵션이 등장했지만
한결같은 자녀를 위한 드리던 기도를 하는 중,,,
최근엔, 주님께선 나에게 있는 잘못된 기도를
짚어 주신다.
학창 시절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고 발견하여 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때에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던
간구 속엔 어떤 시기를
내 임의대로 정해 두었다는 그런 마음을 주신다.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까지를 학창 시절로
선을 긋고 대학교부터는 찾은 소명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경험하고 발휘하며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으로 그림을 그려두고 기도해
오지 않았나 싶다.
사실 딸은 그런 기도를 응답해 주심에
감사하게 하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각에게 맞는
계획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혹여나
하나님의 때는 그분만 아시는 것이고
그분의 방법대로 인도하심을 믿으나
자녀들은 고난은 피해 갔음 싶어 하지
않았나?
고난이 유익임을 그토록 고백하고 고백했건만
자녀들은 그런 삶이 아닌 딴생각을
가슴 깊이 바라고 있진 않았을까?
이미 내 계획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일찍부터 맛 보아 알지만 자녀들은
마치 하나님의 정확하고 단계가 있는
스케줄에 맞게 세상은 인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운영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해 달라는 나만의 어떤 틀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지금 내게 온전히 맡기며
당신을 바라 보라는 싸인으로 여러 말씀을
건네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더 감사하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고
오직 그분께만 내어 놓을 수 있게 하심이.
딸의 인생을 통해서든 아들의 인생을 통해서든
아버지는 일하실 건데, 그분의 때에
나타내 실 건데 조급만 엄마의 맘.
다 내려놓은 줄만 알았던 부분을 콕 짚어 주신다.
그렇다.
아들이 이 시기에 자퇴를 하든
그래서 어떤 길을 선택해 가 보든
이 아이를 통해 주신 소명대로
살 방법과 시기와 과정은 그분만이 아신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가 있더래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는 하나님이시지 않나?
내가 기도하지만 모든 것을 듣고 알고 계신
아버지는 나도 아들도 사랑하시기에 잘못된
기도는 고쳐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
YES도 NO도 기다려도 다 응답이지.
얼마의 틀은 남겨둔 건가?
다 맡긴 줄 알았던
욕심과 두려움을 알려주신 그분이
오늘도 신실하게 인도하실 줄 믿는다.
신실한 아버지의 뜻 안에 온전히 거하길
간구한다.
기도만 하는 자 말고요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그래서 온전히 주께 맡기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 안에 거하는 당신의 자녀 되게
하소서
귀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