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함께 하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이 로마의 백부장은 우리가 일제식민지 시대라면
일본인으로써 우리나라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민족을 위해 교회를 지어준 사람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예수님께 그가 누구인지 나서서 고합니다.
회당을 지어 줬다고 해서 백성의 마음까지
얻는 것은 쉬운게 아닙니다.
백성과의 관계가 있었고 백부장이 우리 민족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까지는 의심과 경계의
마음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었던
세월과 쌓인 사건과 관계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백부장은 자신의 종의 병을 위하여 예수님을
찾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당시 지배국의 높은 계급이 있는 자면서
로마인이었으며
가족도 아닌 종을 위해
식민지 백성중에 백성들의 새로운 지도자로
주목하게 되는 유대인인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유대민족의 바리새인 조차도 검은 눈으로
따라다니며 트집 잡을 거리를 찾고 있는 마당에,
빌라도 총독이 민란을 염려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던 것 처럼 두려움을
가진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태어난 나라가 로마였고
로마 군인이 되었는데 식민지 나라에 파견이
되어 살게된 , 의도 하여 남의 나라에 쳐들어 와서
군림하는 권세자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모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담대하게 서 있고, 내게 주신 자리에서 이 역할로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묵상케 됩니다.
또 그의 특별함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이 된
사도행전 시대 이전에도 , 이방인 중에 구원할
만한 이들이 사마리아 여인 처럼 성경에는 곳곳에
소개가 됩니다.
이 백부장이 그렇습니다.
백부장의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가족보다도
이스라엘 백성, 종, 그의 친구들.
그를 아는 자들은 백부장이 준 사랑 처럼
그를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모습이 백부장을
만나보지도 않았으나 누군지 알게 합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 칭찬 받은 것이라면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선인들이 많습니다.
성품이 좋고 착한 일들을 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들이 많지요.
하지만 이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세를 안 모양입니다.
군인이라는 특수 계층에서 경험한 바로 그는
예수님이 로마인인지 유대인인지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닌 그로 부터 나오는 능력과 신성에 대한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철저하게 그분이 어떤 위치에 있는 분이고
나는 그분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사람도, 군인도 이러하거늘....)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의 어떤 소문을 들었을까요?
생명을 다스리시고 어둠을 몰아내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을까요?
당시 그분이 그리스도,,,메시아 임을 알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 권세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그는 알았던 것 같습니다.
메시아 오면 바로 이런 일을 할 것이라고
했던 , 예언된 메시아임을 기사와 표적을
통해 보이는 현장에 나타나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성령의 역사를 목도하지 않았을 까요?
그런 그가 십자가 사건... 부활사건 이후,
예수님에 대해 줄곧 관심을 갖고 묻고
들으며 진실로 그가 메시아이심을 고백하지
않았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백부장이 칭찬 받은 그 믿음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어떤 능력 있는 자를 향한
신념만이진 않았을 겁니다.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이 그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백부장이 자신을 세워두신 곳에서의 모든
삶의경험이 신앙고백으로 온전히 드려지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는 이들이 주님과의 어떤 관계에서
인격적으로 만나고, 진정한 믿음을 소유케 되는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이 절대 아님을 확인케 됩니다.
기사와 표적만으로는 이러한 믿음도 고백도
갖을수 없습니다.
주님이 육신을 가지고 이땅에 오셨기에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 내시고 제자 삼으셨으나
구원에 이르는 자는 그분의 눈에 보이는 사역만
가지고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보고 성경의 말씀에서 예언된
말씀의 성취임을 믿는 자들이 온전한 믿음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현장에서 똑같은 말씀을 듣고 똑같은 기사와
표적을 봤지만 구원에 이르는 자는 모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관계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랑, 하나됨의 역사를 타고 생명의 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임합니다.
믿음을 보신 예수님....
제게 주신 믿음,
요구하시고 반응키 원하시는 믿음...
그것은 무엇일까요?
믿음, 구원이 임하는 곳에는 문제가 해결되는
열매가 있지 문제로 인해 끌려다니고 씨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의 생명을 바라보고 구하고 고백하고 선포할 때
그 생명이 흐르는 것을 경험케 됩니다.
믿음은 소유가 아닙니다.
받은 생명이 흐르고 흐르면서 더욱 견고해 지는
진주입니다.
오랜시간 깍이고 다듬어져서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가장 밑바닥에서 갯펄에 파 뭍혀 컴컴한
곳에서 때를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거센 파도에 밀려 이리저리 휩쓸려
정처 없이 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진주가 되어가려 깍이는 것이라면
그 순간은 고통스럽기도 한 것이 당연한 이치.
험한 세상이니 말입니다.
진주는 내가 언제 부터 진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습니다.
깎이고 깎여서 진주가 될거라는 것도 예상하지도
못합니다.
매일 파도에 밀려 당도한 곳에서 그날 그날을
살아냅니다.
몇번인지도 모를 담금질에 자신을 맡깁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리는 순간까지 ,,,
그 순간 내가 보석이었다 말해 주십니다.
나를 이미 알고 계신 그분이 그간 아름다운
진주로 다듬고 계셨던 스토리를 들려주시며,,,,
그것이 꼭 필요했던 여정이고 그 과정가운데
만난 의도하지 않았던 그 어떤 것도
그분의 손길이 미치기 전에 나를 어떻게도
할 수 없게 보호하고 계셨음을 알게하시고
고백케 하시고 찬양케 하십니다.
겉으로 보이는 매끄러운 모습이기 전에도
나는 이미 진주였고 때를 맞이한 것임을
고백케 하십니다.
내가 바다 어딘가에 정처없이 떠 밀려 다니는
동안에도 ...어두컴컴한 수심 깊은 곳에서
침묵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는 동안도 주님은 다 알고 계셨고
그 물결 하나 하나에도 간섭하고 계셨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카이로스의 때 이전의 모든 시간을
내가 홀로 거센 파도도 어둠도 견딘줄만 알았는데
나를 품고 계신 주님이 홀로 감당하고 계셨음을
고백케 하십니다.
그분의 품안을 한 시도 떠난 적이 없음을
그제야 고백케됩니다.
앗~~~!
주님~ 반응하라고 말씀하시는 믿음이요?
주님의 통치와 주권에 나의 시선과 마음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두려움 없이,
주님의 일임을 신뢰하며 , 성령을 구하며,
주의 이름과 주의 의의를 위한 삶을 구할 때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뤄짐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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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 내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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